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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 [다니엘 칼럼]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이기심이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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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니엘 작성일19-01-17 18:52 조회9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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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연구가)

청계천-을지로 지역은 그야말로 ‘노른자 땅’이다. 2호선, 3호선, 5호선 등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연결하는 핵심 교통망이 중복해서 지나고, 청계천과 복합 쇼핑몰 등 문화 공간이 지근거리에 있으며, 그 자체로 도심의 일부인 지역이다. 그래서 최근 대두한 이 지역의 노후화·공동화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거 및 업무 시설을 조성하기에 손색이 없는 땅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면, 시민들이 충분한 후생 수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땅이라는 희소 자원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을지로 재개발 계획도 이러한 맥락적 고려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본디 박 시장은 도시의 개념과 기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시장이었다. 도시는 경제 주체들의 고밀도 집적을 유도하여 자원의 흐름을 촉진하는 ‘현대 문명의 심장’이다. 그런데 박 시장은 알토란같은 서울 한복판에서 농사를 짓겠다거나, 도심 지역의 고도를 90m로 제한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랬던 그가 을지로 전면 재개발 의지를 천명한 것은 3선을 거치며 도시의 개념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거나, 적어도 그것이 시민들의 후생 수준 개선에 기여하여 향후 탄탄한 대선 지지층을 확보하게 해주리라 깨달은 결과일 테다. 어찌되었든 그는 도시에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재개발’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늘 따라 붙는 기존 상공인들의 반발이 이번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레 놀란 박 시장은 재개발 계획을 재검토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 예술인’이라는 탈을 쓴 좌익 운동권 출신들이 그 뒤편 조정석에 포진해 있음은 차치해 두자. 반발에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을지로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반대 목소리의 요체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을지로 지역의 오래된 철물·전구 상점가와 노포들은 그저 산업화 시절 형성된 여러 舊 상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상권은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늘 바뀌고, 또 바뀌어야만 한다. 그것이 ‘오늘보다 나은 미래’요 ‘지속 가능한 발전’이다. 외면 받는 과거를 억지로 붙들어 묶어봐야 모두가 피곤해진다. 아무도 필자의 코푼 휴지를 문화재로 지정하길 원치 않을 것이다.

또한 을지로 지역이 재개발 된다 하여 매일 손님들로 북적이는 을지면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요, 우리나라 철물 산업과 전구 산업이 졸지에 망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이전의 역사를 계승할 뿐이고, 노른자 땅의 용도가 시민들의 후생 수준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뀔 뿐이다. 재개발이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상공인 생존권’ 운운도 부박하기 그지없다. ‘생존권’이란 당최 무슨 권리인가. 한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의무가 수반되어야 한다. 결국 ‘소상공인의 생존권’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소비자의 구매 의무’ 또는 ‘소비자가 더 나은 삶을 포기할 의무’가 내재해 있다. 그들의 장사할 권리를 위해 서울 시민들은 직장과 주거의 근접, 문화 공간에 대한 높은 접근성, 편리한 교통과 같은 후생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서울 시민들의 막대한 세금으로 조성한 청계천 수변과 지하철 노선이 더 잘 활용될 기회를 포기하고 묵혀두어야만 하는가. 그래서 좌익들의 도덕은 본질적으로 약탈인 것이다.

도심 지역을 고밀도·최첨단으로 재개발 하면 외곽 지역의 땅에는 여유가 생긴다. 이 지역에 소상공인을 위한 상권이 형성되도록 인프라 측면에서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들이 외곽 지역으로 나가는 것은 불공정한 게 아니다. 오히려 서울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들이 도심 지역에서 실현되지 못하게 막는 행위가 불공정한 것이다. 땅도 다른 자원처럼 소비자의 선호 순위에 맞게 활용되어야 한다. 희소하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향수를 갖는다. 과거는 늘 세피아 빛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의 뇌리에 아련하게 기억되는 편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향수를 극복하고 한 발짝 내딛을 때, 우리의 삶은 조금씩 전진한다. 망하는 것만 보면 세상은 진작 망했어야 하는데, 세상은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후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자기 세대의 알량한 추억과 맞바꾸겠다는 극단적 이기심이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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