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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 [박성수 칼럼] 취지(Intention)에 취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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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니엘 작성일18-10-18 03:02 조회1,2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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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4학년)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을 이행하지 않았고, 탄소세(carbon tax)를 부과하지도 않는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지 않았으며, 근래에는 전 세계 195개국이 가입했다는 파리기후협약(Paris Accord)도 탈퇴했다.

국제사회 그리고 진보좌파 진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강하게 규탄했다. 당시 미국의 파리협약 탈퇴는 가진 것 많은 미국이 안분지족할 줄 모르고 무한한 탐욕을 취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비판자들은 트럼프의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 타파를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못하는 천박성으로 등치시켰다.

그러나 영국의 국제적 에너지기업 BP가 발간하는 ‘BP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의 최근호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미국은 모든 주요국에서 가장 많이 탄소를 절감하였다. 율로 따져보면 0.5% 줄였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수치인데, 탄소 배출량을 절감하는 와중에 미국 국민경제 성장률은 3%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의 두 가지 목표를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을까? 핵심은 셰일 오일 및 가스 혁명(the shale oil and gas revolution)이다. 셰일 혁명은 전력 발전소의 운영을 위한 자원으로 값싸고 청정한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전환기를 열었다.

오히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탈퇴한 미국을 비난하던 각국의 상황을 보면, 협정을 위반한 나라들이 부지기수이다. 유럽기후변화대응 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 Europe)에 따르면, "모든 EU 국가들은 파리 협정 목표에 따라 기후 변화에 대응을 신축적으로 변화시켜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다." 고작 5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 목표의 50 퍼센트 수준만 달성했을 뿐이다.

결국 파리기후협약에 조인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스스로 명명한 협약 사항 대부분을 이행하지 못하였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것이다. 반면 그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은 더 많은 진전과 개선을 이루어냈다. 기후 변화에 대한 국제적 경고에 가장 귀 기울여 심열을 다한 나라는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미국이다.

진보좌파 진영은 실질적 결과(Actual results)보다는 좋은 의도(Good intentions)에 더 비중을 둔다. 미국이 국제사회를 위해 가장 개선된 결과를 내었다는 진실보다는, 미국이 국제 기후 협약들을 지키지 않은 것에 분개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릇을 닦을 거야.”라는 슬로건이지, 실제로 누가 그릇을 닦았는지는 뒷전이다. 참 종잡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사회도 이즈음 결과와 과실보다는 의도와 취지에 방점을 두고 있지 않은가.

‘소득주도성장’과 ‘포용적 성장’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오가는 요즘, ‘노예의 길’을 남긴 하이에크를 생각한다. 그는 국가가 시장을 통제하는 관리경제는 소수 정책결정자에 의해 독재화되고, 국민은 자유와 번영은커녕 모든 것을 정부에 매달려야 하는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그런 정부가 사회공동체에 결코 ‘악한 의도’를 표방하지 않는다. 정부는 늘 이타적이며 품격 있으며, 격조 높은 단어로 아름답게 의도를 장식한다.

그러나 그 좋은 의도가 최선의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하이에크는 정부의 이념적 가치 추구를 위해서는 작은 혜택을 담보로 경제적 자유가 박탈됨을 지적했다. 국민은 결국 직업과 소득, 연금 등 모든 것을 정부의 ‘공짜 점심’에만 의존하는 노예로 전락하게 됨을 우려했다. 그러한 하이에크의 경고는 그대로 적중했다. 좋은 의도와 함께 국가의 ‘계산능력’을 믿은 사회주의 경제는 실패했고, 수많은 이들이 노예가 되었다. 멀리 볼 필요 없이 이북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진실이다.

모든 부문이 마찬가지겠지만, 좋은 의도와 좋은 결과 간에 인과관계는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건전한 국민경제를 위해서는 경제와 정치의 분리가 요구된다. 도그마와 클리셰에 빠진 경제는 이념 추구의 도구에 불과하다.

아쉽게도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특정한 이념에 얽매인 경제정책은 반드시 반대급부로 그 값을 치러야 한다. 경제가 정치화하고 자율과 경쟁을 제한할수록 분배의 원천이 되는 생산과 투자 생태계는 크게 위축된다. 결국 ‘경제의 정치화’의 비용은 저성장과 고실업 그리고 고물가다.

기억하자. 자유와 경쟁이 억압된 경제가 번영을 누린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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