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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 [다니엘 칼럼] 불황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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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니엘 작성일18-10-10 17:20 조회1,4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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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연구가)

케인스 경제학에는 ‘완전고용 국민소득’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나라에서 동원 가능한 노동과 자본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총동원 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실질국민소득이다. 케인스에 따르면 불황기에는 노동과 자본이 유휴 상태에 빠져 희소성이 낮다. 그럼에도 비관적 예상 때문에 이들을 동원하는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실질국민소득은 완전고용 국민소득 밑으로 주저앉는다. 이 때 팽창적 통화·재정정책을 사용하면 비관을 낙관으로 바꿔, 유휴 상태에 빠진 노동과 자본을 동원해 완전고용 국민소득에 도달할 수 있다. 노동과 자본의 희소성이 낮은 상황이므로 물가가 앙등하지 않는다.

희소성이 낮다는 것은 (시장) 가치가 낮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황기에 희소성이 낮은 노동과 자본이란 불황기에 가치가 낮은 노동과 자본이다. 호황기엔 여기저기서 수요해 가치가 높았던 노동과 자본이 불황기에 갑자기 가치가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별 노동과 자본은 소비자 기호, 기술, 기후 등의 변화로 언제든지 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엄청난 규모의 노동과 자본이 동시다발적으로 가치가 낮아지는 현상을 단순히 “비관이 팽배한 탓”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모든 원인은 바로 호황기에 ‘시간 선호에 맞지 않는 투자’가 대거 일어난 데에 있고, 그 배후에는 ‘화폐 증발’이 있다. 화폐 증발은 대규모·장기의 자본재 투자를 확대한다. 투자가 이뤄져 노동과 기존 자본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러나 늘어난 투자로부터 늘어난 화폐 소득을 얻는 경제 주체들은 시간 선호가 변하지 않았으므로, 재투자가 아닌 소비를 한다. 그 결과 자본재 투자를 지속할 저축이 부족해지고, 호황기에 형성된 자본이 유휴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자본재 투자에 고용돼 있던 노동자는 실직하고 임금이 하락한다.

불황은 노동과 자본이 희소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시간(기다림)’ 또는 ‘미래 선호’가 희소한 상태다. 경제 주체들에게 늘어난 것은 화폐일 뿐, 시간 선호는 여전하다. 따라서 늘어난 화폐는 소비에 쓰일 뿐, 자본재 투자로 환류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화폐를 푼다 한들, 호황기에 형성된 자본재 투자는 이어질 수 없으며, 화폐 소비 증가로 소비재 가격만 뛰어오르게 된다. 그 결과가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이다. 긴축은 필연적이다.

불황기에 돈을 풀어도 소비와 소비자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는 저물가-저성장 국면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 최근까지 지속되었다. 케인스학파는 이를 두고 ‘저축의 역설’을 운운하며 득의양양했다. 그러나 용어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에서 늘어난 것은 ‘저축’이 아니라 ‘현금 잔고’다. (저축도 늘어나긴 하였고, 실제로 그것이 선진국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긴 하였지만, 현금 잔고가 훨씬 크게 증가했다.)

케인스학파는 화폐 소득에서 소비에 사용하지 않은 모든 부분을 ‘저축’이라고 한다. 그러나 저축은 미래에 이자를 얻기 위한 행위다. 즉, 저축의 증가는 시간 선호가 이전보다 낮아진(미래 선호가 이전보다 높아진) 결과다. 반면 경제 주체들이 요구불예금, MMF 등 화폐 상품에 더 많은 소득을 배분하는 것은 ‘미래 선호가 이전보다 높아진’ 결과가 아닌, ‘미래를 불확실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화폐 상품에도 소정의 이자가 붙긴 하지만, 그 이자가 화폐 상품에 더 많은 소득을 배분하는 주된 이유는 아니다.

따라서 소비에 사용하지 않은 화폐 소득 중 생산 구조에 ‘투자’된 부분만이 저축이다. 나머지는 현금 잔고다. 현금 잔고의 증가는 시간 선호가 낮아진 결과가 아니다. 현금 잔고가 증가해도 투자를 위한 ‘시간(기다림)’ 또는 ‘미래 선호’는 여전히 희소하다. 대체로 선진국의 화폐는 안정적이라는 미신이 존재하여, 늘어난 화폐가 소비로 흘러들지 않고 현금 잔고로 흘러들 뿐이다. 소비 증가와 현금 잔고 증가는 둘 다 저축의 증가가 아니며, 화폐가 늘어난 데에 비해 시간 선호가 변하지 않은 탓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래 선호가 여전히 희소하기에 돈을 풀어도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유휴 자본이 가동되지 않으며, 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돈을 풀지 않는다면 유휴 자본과 노동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이 좀비처럼 화폐 증발로 연명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 주체들의 시간 선호와 맞지 않는 자본재 투자에 고용돼 있던 유휴 자본과 노동은 시간 선호와 맞는 소비재 투자에 고용된다. 일부 유휴 자본은 완전히 가치를 잃고 흉물이나 쓰레기로 전락하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화폐 증발을 지속하기 때문에 유휴 자본과 노동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이동하지 못해 불황이 장기화 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기나 긴 불황이 대표적이다.

시간 선호가 낮아지지 않으면, 유휴 상태에 빠진 자본을 모두 동원할 방법이 없다. 다만 시장 경제에는 정부 개입이 있더라도 자기 조정 기능을 통해 자본과 노동을 재배치하려는 힘이 있다. 바로 이러한 자기 조정 기능 덕분에 세계 경제는 10년이라는 기나 긴 불황의 늪에서 탈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중앙은행은 자신들의 팽창 정책이 세계를 구한 양 행세하고 있다. 진실은 이들이 뿌려댄 화폐가 이제 또 다른 경기 변동을 일으킬 조짐이 세계 곳곳, 특히 진앙인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늘어난 화폐가 더 이상 현금 잔고로 축장되지 않고 소비에 쓰이는 순간, 더 고통스러운 긴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완전고용 국민소득’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자본은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부여하는 가치’에 의해 유용성이 결정된다. 유휴 자본이 가치를 갖지 못하는 이유는 그 자본을 가동하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미래 투자보다 현재 소비를 더 선호하는 ‘시간 선호’가 충분히 낮지 않은 탓이다. 결국 유휴 자본의 물리적인 존재를 근거로, 이를 모두 동원한 완전고용 국민소득을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무 의미도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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