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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 [다니엘 칼럼] 항등순환경제를 가정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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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니엘 작성일18-10-08 17:00 조회1,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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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연구가)

케인스학파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을 비판할 때, “항등순환경제를 가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 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어떠한 불확실성이 없고, 모든 생산재(노동·토지·자본 서비스)가 수요에 맞게 고용된 상태인 ‘항등순환경제(Evenly Rotating Economy)’를 가정한다. 여기에서 시작해 호황과 불황,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게 경기변동이론이다. 케인스학파는 이를 두고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하여 이론의 현실 적합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는 항등순환경제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균형 상태’라는 것은 분명 현실에 없다. 하지만 시장에는 항등순환경제로 끊임없이 수렴하려는 자기 조정 기능이 있다. 이자율, 임금, 지대 등 ‘가격’이 바로 자기 조정 기능의 매개체다. 따라서 항등순환경제라는 ‘상태’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한 상태로 수렴하려는 ‘과정’은 상존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러한 과정을 방해하여, 경기 변동을 초래하는 정부 개입(통화 팽창)을 지적하기 위해 출발점을 항등순환경제로 삼고 있을 뿐이다.

항등순환경제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힘, 즉 자기 조정 기능과 역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은 ‘불확실성’이다. 지금의 생산-소비 구조가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것이다. 대체로 소비자의 기호 변화, 생산 기술의 변화, 기후 변화 등이 불확실성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장에 내재하는 이런 불확실성은 서로 상쇄되는 경향이 있다. 전통시장에 대한 선호가 감소하면, 대형마트에 대한 선호가 증가한다. SSD가 개발되면서, HDD는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추세다. 갑자기 비가 많이 오면 양산이 안 팔리겠지만, 우산은 불티나게 팔리고 그 종류도 다양해질 것이다. 요컨대 불확실성의 존재는 ‘모든’ 자본가와 기업가가 동시에 낙관적(호황)이었다가, 동시에 비관(불황)에 빠지는 경기 변동을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경기 변동의 원인은 시장 외부에 존재할 뿐, 시장 그 자체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가정할 어떤 이유도 없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생산 구조의 다양성과 상관없이 모든 경제 주체들을 연결하는 고리가 화폐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인위적인 화폐 증발이 경제 주체들의 시간 선호와 괴리된 자본 구조를 형성해 경기 변동을 일으킨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지난 칼럼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이론의 이해>를 참조하라.

케인스학파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가격을 통한 시장의 자기 조정 기능을 부정한다. 그러고선 자의적으로 불황을 기본으로 상정한 뒤, 이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팽창적 통화·재정정책을 주문한다. 케인스학파의 이런 태도는 돌팔이 한의사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환자가 몸이 아파 병원에 찾아 왔다. 그런데 돌팔이는 “몸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탕약을 처방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은 간경화증으로, 탕약(통화 팽창)을 잘못 먹은 게 원인이었다. 병의 원인 진단도 하지 않고 처방하는, 탕약 때문에 병에 걸린 환자에게 탕약을 처방하는 돌팔이에게 어떻게 진료를 맡길 수 있겠나!

그러면서도 케인스학파는 사실상 항등순환경제를 시장의 전제 조건으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들은 완전경쟁시장에 근거한 균형이 형성되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동시에 완전경쟁시장이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항상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케인스학파에 시장이란 무엇인가. 이런 논리라면 시장은 아예 존재할 이유가 없다.

시장은 원래 완전경쟁시장이나 항등순환경제가 될 수 없다. 시장은 절대로 불확실성을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상존하는 불확실성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게 하여 상쇄시키는 것이 시장의 미덕이다. 이런 상쇄 과정을 거쳐 시장은 물질적 풍요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 결론적으로 케인스학파의 처방은 악덕하다. 불확실성이 호황 또는 불황이라는 한쪽 방향으로 쏠리게 하여, 경제 진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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