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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 명문 사회라야 명문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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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수 작성일19-12-27 10:27 조회2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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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웨덴 발렌데리 가문의 문장>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스웨덴의 최고 명문가는 발렌데리 가문이다. 150년 전 금융업을 시작한 이 가문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업들의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스웨덴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에 대비 40%를 넘을 수준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언급되는 경제적 집중도로 놓고 보면 제재를 가해야하는 경우에 해당되겠으나, 발렌데리 가문은 스웨덴 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일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명문가는 그 외에도 다양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로스차일드 가문이고, 영국의 처칠 가문도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을 배출한 루스벨트, 부시, 케네디 가문이 잘 알려져 있고, 기업가 출신의 벤더빌트와 록펠러 가문 역시 유명하다. 일본은 현 최장수 총리인 아베 가문 그리고 아베 총리 이전의 최장수 총리를 기록했던 고이즈미 가문이 있다. 통상 일본의 명문가는 한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지역경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명문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점은 명문가로서의 명망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지지층, 곧 팬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다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지 않아야 명문가가 유지될 수 있다. 타인의 성공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악의적이고 음모론적인 비방은 접어두고, 비교보다는 공존과 상생을 지향하는 문화가 형성될 때 명문가가 존재할 수 있다. 한 사회에서 명문가가 존재한다는 점은, 곧 해당 사회가 충분히 성숙한 사회임을 시사한다. 명문 사회 속에서 명문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에 인정받는 명문가가 없다는 점은 아쉬울 따름이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인 문석균씨는 총선에 출마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형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팬덤이 없다. 그도 그러할 것이, 그는 세계적인 명문가에서 가문의 후계자들에게 적용하는 엄격한 자격기준이랄 것을 전혀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문의장의 아들이라는 점과 별개로, 그가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공헌과 헌신을 해왔는지 알고 있는 이가 없다. 현 국회의장의 아들의 경거망동이 입법부와 국가의 품격을 깎이는 참사다.

문의장의 의원직 세습논란에 대한 보수 정치권의 대응 또한 졸렬하다. 문의장을 가리켜 ‘장비’가 아닌 ‘동탁’이라 비난하는 것은, 그 의미는 이해할 수 있으나 개인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저잣거리 언변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명문가에서 가문의 후손들에게 요구하는 자질을 간추리고, 문의장에게 정중하게 이를 제시하여, 여야의 정치공방의 주제가 아닌 한 가문의 집안 문제로 일단락 하는 것이 마땅했다. 고담중론이 무수한 규정과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토론으로 정리되기도 바쁜 연말, 승자가 없는 필리버스터로 국회의장 아들의 세습논란이 왕왕 언급되는 것은, 신문의 정치면보다는 예능면에 실리는 것이 더 마땅한 장난질에 불과하다.

돌이켜보면 존경받아 마지않을 인물은 따로 있다. 기업가, 특히 최근에 작고하신 대우의 김우중 회장과 LG의 구자경 회장을 반추할 수 있다. 특히 김우중 회장의 열렬함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구절 속에서 아직도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비행기의 일등석을 타되,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요를 깔고 잠을 잤다고 한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여 행선지에 도착하자마자 극악의 일정을 완벽히 소화하기 위함이다. 개 눈 감추듯 재빠르게 밥을 먹으며 분 단위로 움직였으며, 접대를 위한 회식자리에서는 양주 몰래 보리차를 마셨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한 기업인의 가문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각종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생활을 샅샅이 파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병역면제율’이라는 기이한 지표를 만들어 비난한다. 누가, 언제, 어떠한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인지 요구하는 광경은, 마치 기업가를 공직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자아낸다.

아마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법치주의가 자리를 잡지 못한 듯하다. 대기업 일가에 대한 병역이행 논란은, 금권(金權)이 있으면 사회적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음을 시사한다. 국민이 법과 법의 집행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법칙이 바로서지 못한 가운데, 남과의 비교가 만연하고, 타인의 성공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풍토 속에서 명문가는 존재할 수 없다. 명문가는 명문사회라야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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