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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 다 같은 일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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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수 작성일19-11-26 06:30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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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은 일자리가 아니다

소위 SKY 출신의 취업도 막막해진 지금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아비규환은 비극이다. 고용의 양과 질이 모두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10월 말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금년 8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정규직 근로자는 약 1,300만 명이다. 이는 지난해 동월 대비 35만명이 감소한 것이다.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함에 따른 영향이라 해도 정규직 일자리의 감소는 결코 수용하기 어려운 결과이다.

가령 경제활동인구 감소의 충격이 상당했더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구분하지 않고 일자리의 수가 감소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통계청에 발표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약 750만 명으로, 이는 통계청이 2003년부터 해당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치수라고 한다. 10월에 발표한 고용동향발표에 따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계한 전체 취업자의 수는 전년 동월 대비 약 42만 명 증가하였는데, 결국 전체 일자리의 수는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아닌 비정규직 일자리로 채워졌다.

고용을 창출하는 역할을 정부와 기업 중 어느 곳에 비중을 둘 것인가는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다.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모든 정부가 기업의 고용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현 정부의 정부 주도 고용창출은 매우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다. 놀랍게도 현재 고용창출역량의 대부분은 기업이 아닌 정부의 재정지출에서 나오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결과, 말하자면 고용 통계가 개선된 것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알바형 일자리가 가득하고, 장기적인 고용 역량을 감소시키는 공무원의 증원, 기업의 불확실성에 따른 고용 위축이 종합된 결과이다.

물론 비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난 것 자체를 두고 선악정사를 판단할 수는 없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증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할 기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정규직 근로자 중에서도 대부분은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시간제 근로자라는 점이다. 시간제근로자는 작년 동월 대비하여 40만명이 넘게 증가하였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전체 근로자 증가폭에 맞먹는 수준이다. 게다가 연령대를 고려하면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고령근로자로, 이들이 왕성한 경제활동의 주역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같은 비정규직일자리라도 민첩한 20~30대 프리랜서의 일자리와 서너 시간 잡일을 하는 어르신을 같은 경제주체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이는 정부가 의도하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60대 이상 근로자 증가 폭 역시 40만 명을 상회하는데, 정부는 집권 이후 대대적인 노인 일자리 증가 사업을 펼쳐왔다. 기업에 보조금이라는 당근과 허가제라는 협박을 가해도 생존여부를 목전에 둔 기업들이 의도하는 대로 반응하지 않자, 양적인 지표라도 위장하기 위한 위선책을 이용한 것이다. 늘상 비난하던 4대강 사업을 몇 번이고 뒤짚고 다시 할 예산으로 말이다. 아마 그 예산으로 말 그대로 땅을 파고 덮기만을 반복시키고 임금을 주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경제가 부흥되었을지 모른다.

왕성한 경제활동의 주역인 40~50대가 아닌 미숙한 청년층과 은퇴를 한 노년층의 근로자만 늘어나고, 이들의 고용 유형도 비정규직 고용 중 시간제 근로라는 점은 국력이 지극히 쇠하였음을 반증한다. 우리 민생 경제의 핵심은 가족의 아버지와 어머니이고, 이들의 통상 연령대인 30~50대의 건실한 정규직 일자리가 절실한 지금이다. 문제는 이들의 일자리 파이는 전년 대비 20만 명이나 감소했다. 경제 활력의 핵심인 기업의 목을 죈 결과는 매우 정직하게 도출된다. 특히 한국 경제를 지탱해오던 7대 제조업이 사양산업에 접어들어감은 매년 통계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소득 불평등도 심화되는데, 이는 정부가 고용정책과 복지정책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가 지금 고령층 근로자를 알선해주는 등의 일련의 정책은 고용정책이라기보다는 복지정책이다. 더구나 모든 고령근로자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고령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부업을 찾아다니는 여유있는 고령자에게 적용되고 있다. 생계가 막막한 고령근로자들은 이미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슬로건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다.

마셜이 언급했던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경제적 이성이 사라진 지금이다. 정부는 일련의 기업정책을 통해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 수 없는 환경을 조성했고, 그로 말미암은 고용참사를 대응할 때에는 복지정책을 고용정책으로 혼동하였다. 그렇기에 자원은 너무나 비생산적인 분야에 투입되었고, 절실히 일자리가 필요한 경제활동계층의 일자리는 감소하였다. 고용의 질과 양 그리고 소득불평등마저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구조개혁이 감행되어야 하는 조직은 다름 아닌 청와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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