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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현 | 문재인 정부가 집 값을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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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준표 작성일19-11-10 16:04 조회2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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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칼럼니스트]

제목: 문재인 정부가 집 값을 잡을 수 있을까?

"서민들도 아파트를 사기 위해 집값을 낮춰야 한다"

맞는 말인가? 저 문장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옹호하는 두 가지 당위성이 녹아들어있다. 첫째는 인간의 연민을 자극하는 직관적 개념의 '서민', 둘째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자극하는 '주택가격'이다.

"서민들도 아파트를..."이라는 문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아파트는 꼭 서울과 수도권의 비싼 아파트여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가 기어코 집값을 잡겠다며 씩씩대는 지역들은 서울의 강남4구와 분당 등 나름 잘 사는 지역의 아파트 값이다. 집 값이 오르지 않는 곳은 아파트가 아파트도 아니다. 서민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로 하루 시작을 맞이하는 그런 아파트에서 살아야 아름답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서민들이 정작 사는 곳은 지방에 집값이 높지 않은 아파트이거나 반지하, 원룸 등이다. 서울에 집을 사겠다며 달려드는 서민들은 사실 서민이 아니다. 미국에서 서민들을 위해 멘하탄 집 값을 잡겠다며 정치인들이 입을 함부로 놀리고, 영국에서 런던 집 값을 잡겠다며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한국은 지금 그런 모습이다. 서울 집 값을 잡겠다며 서민들을 운운하고 있는 모습 말이다.

정부의 부동산 때려잡기 정책으로 정작 서민들이 살고 있는 지방 아파트 가격은 하락 중이다. 서울과 몇몇 지역만 아파트 값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다 있다.

서울 집 값이 오르는 이유는 단순히 '주거'라는 개념이 아닌, '투자'라는 성격으로 주택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빚을 지고서라도 서울에 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향후 차익을 남길 수 있기에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투기 세력'이라고 단정 짓지만, 국토교통부 장관인 김현미를 비롯해 정부 고위 관료들이 모두 '투기 세력'에 동참하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익을 좆는 인간상을 부정할 순 없다.

서울 집 값이 오르는 이유는 이처럼 주택을 '주거' 개념으로 보지 않고 '투자'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서울 집 값이 오르는 이유는 투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는 돈이 풀리고, 수요가 몰리고, 공급이 줄어들면 이익을 보게 되어 있는 아주 단순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정부는 집 값을 잡겠다고 하면서 저 단순한 메커니즘과는 정반대로 돈은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이 풀고 있고, 가격을 통제해 공급자들을 죽이고 있다. 애초에 서울 집 값을 올릴 작정이 아니고서야 이런 정책을 쏟아낼 수 있을 지 정말 그 본심이 궁금할 정도다.

수요를 잡겠다고 하는 정책은 역대 가장 강력한 '대출 규제'를 통해 수요 옥죄기에 나선 정부다. '대출이 필요없는 부자들'만 서울에 집을 사게 만든 것이다. 이 정도면 이들이 바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그러나 이 바보들은 오직 서민을 위한다는 일념 하에 이 바보짓을 멈추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인간은 직관적이고 당위적인 것에 쉽게 휘둘린다는 진화생물학을 공부해야할 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들을 이해하려면 선동에 취해 이성을 마비시켜야 한다.

사회주의는 항상 그럴 듯한 당위성을 직관적으로 풀어내며 대중들을 선동해왔다. 잘 생각해보면 정부가 집 값을 잡기 위해 분양가를 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발상인지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베네수엘라의 얘기다.

베네수엘라는 정부가 최소한 국민들의 '의식주'는 책임져야 하지 않겠냐며 시장에 개입했다. 그 중 재미난 것은 생필품에 대한 가격 조정이다. 생필품은 풀어 말하면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필수 품목'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풍기는 직관적인 개념이 정부의 가격 개입에 강력한 당위성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대중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결과는 시장에서 아무도 생필품을 생산하지 않게 됐다. 당연히 제 값에 생필품을 팔지 못하니 공급업체들은 사업을 접었고, 가격은 폭등했다. 이런 예시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살아있고 제정신인 사람들이라면 왠만해선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를 인정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전히 '착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사회주의자들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생산 시설의 국유화, 즉 공산주의다.

희망사항을 잔뜩 구겨넣어 정책으로 집행한 국가들이 매번 실패했어도 자꾸만 시도하고 싶은 이들에 대해 하이예크는 '치명적 자만'이라는 한 단어로 그들을 표현했고, 평등이니 공동체주의니 사회민주주의니라는 수사적 기만에 대해 노직은 현실에서 적용되는 정책들은 결국 다 똑같다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생명과 같은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해 시장을 이겨보겠다는 발상은 전 세계에서 정책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시장은 정부가 끊임없이 도전해서 이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서민을 위한다는 이중성이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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