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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 [다니엘 칼럼] 이영훈, 목 놓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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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니엘 작성일19-08-17 01:59 조회2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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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연구가)

TV를 즐겨보진 않으나 종종 인터넷 기사에 보이면 눈길이 가는 프로그램이 있다. SBS에서 방영하는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제목처럼 팔도의 동량지재들이 각자의 재주를 뽐낸다. 음악, 미술, 체육은 물론 지하철,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특출난 아이들이 있었으나, 2년 전 이맘때쯤 “역사를 사랑하는 고성의 영어 영재”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왔던 어느 산골 소년이 가장 뇌리에 박혀있다.

그는 불과 9세에 불과한 나이에 영어에 통달한 데다, 역사의식이 투철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강제 징용 사례로 꼽히는 군함도(하시마섬) 강제 징용에 대해 외국인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서울의 대표적인 외국인 밀집지로 꼽히는 이태원 한복판에서 강제 징용의 만행을 알리고자, 피켓 사진을 들고 영어로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이 본 칼럼에 첨부된 사진이다. 의기로운 모습이나 안타깝다 하겠다. 그가 설명 중인 좌측의 피켓 사진은 모두 일본인의 사진으로, 조선인 강제 징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최근 숱한 논란을 낳고 있는 이영훈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는 그 사진들의 전말을 소상히 다루고 있다. 자칭 독도지킴이라는 서경덕 교수가 뉴욕의 타임스퀘어에 광고까지 한 첫 번째 사진은 일본의 사진작가 사이토 코이치가 50년대 중반 어느 폐광에서 석탄을 도굴하는 일본 서민을 찍은 것이다. 가난한 서민의 삶을 담는다는 목적으로 찍은 그 사진 필름을 사이토는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2018년 그는 국립박물관에 방문해 항의하며, 전시 중단을 요구했으나 역사관 측은 거부했다. 강제 징용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사진은 올해 개정 출판된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으나, 실상은 홋카이도 개척 과정 중 토목 건설 현장에 감금된 채 강제 노동에 시달린 일본인 10명의 사진이다. 요즘말로 하자면, 신안의 ‘염전노예’ 쯤 되는 사건을 다룬 것으로 1926년 9월 9일자 아사히카와 신문에 게재되었다. 저 훌륭한 소년은 이토록이나 거짓과, 무검증과, 오직 비분강개하는 느낌으로만 구성된 반일 종족주의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이영훈 교수에 대한 비난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요즘, 어느 언론에서도 그가 책에서 다룬 통계나 자료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는 바가 없었다. 언론은 그가 그토록 경계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모습으로 그에게 린치를 가하고 있다. 그는 강제 징용을 이 책 어디에서도 부정한 일이 없었다. 1944년 9월부터 1945년 4월, 미 공군이 대한해협을 장악하여 조선인의 일본 수송이 불가능해진 시점까지, 10만 명 이하 정도의 조선인이 강제 징용되었음을 그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가 주장한 것은 1939년 9월부터 시작된 ‘모집’과 1942년 2월부터 시작된 ‘관 알선’을 통해 동원된 노동에는 조금의 강제성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인 탄광 인부의 임금이 일본인 대졸 사무직 초임의 2.2배에 달했다는 점, 그러나 농경 생활에 익숙한 조선인들은 탄광을 두려워하여 2년 단위 계약이 끝나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점, 그로 인해 조선인 장기 근속자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고, 바로 여기서 장기 근속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일본인 인부와 임금 격차가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당시의 착암식 채탄 기술이 갖는 특성을 밝힌 뒤, 조선인 인부를 일본인 인부와 구별하여 업무를 맡길 경우 채산성이 심각히 떨어지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수준의 디테일까지 발휘하고 있다.

“조선 쌀의 일본 유입을 막으려는 일본 정부의 조치에 반대한다”는 조선 농민의 입장이 담긴 1931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읽어보지 않았다면, 헤이그육전법규라는 국제 법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다면, 민족 자본을 탄압하기 위한 목적이라던 총독부의 회사 설립 허가제가 일본 기업에도 적용된 법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이 책에 대해 논해서는 안 된다. 무수한 자료들이 이 책을 비집고 흘러넘침에도 이 좁은 지면에 모두 담지 못함이 그저 괴롭다.

그러는 사이 언론은 이제 이영훈이 입만 열면 ‘망언’이라는 수준의 보도를 일삼고 있다. 근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부르다 ‘복장이 터져’ 죽겠다는 것이다. 아와 비아만을 부르짖던 무장론자 신채호, 전략적 침묵으로 독도를 지켜내자는 이영훈. 100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는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는 진실에 마주한 채, 앞으로의 100년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역사적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에 의해 박살나버린 자본주의 맹아론이 여전히 교과서에서 맹위를 떨친다는 사실이 그다지 밝지 않은 미래를 암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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