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 칼럼] 이순신은 문재인보다는 전두환과 비슷하다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칼럼

박성수 | [박성수 칼럼] 이순신은 문재인보다는 전두환과 비슷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성수 작성일19-08-10 15:11 조회250회 댓글0건

본문

전두환 前 대통령의 과오는 감춰지지 않는다. 그는 5·18운동 진압 과정, 대통령 취임 과정에서 참회와 속죄로는 부족한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명백히 대한민국의 경제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대통령이다. 그의 집권기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가장 넉넉한 생활을 구가했다. 높은 성장률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또한 전두환은 외교적으로 많은 과실을 거둔 대통령이다. 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외교의 빛나는 업적을 이루었다면, 전두환은 일본과의 외교 담판에 있어 뛰어난 협상력을 보였다. 그는 일본으로부터 얻을 것은 다 얻어내면서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루었다.

한일 경제 전쟁이 시중에서 운운되는 지금, 전두환의 일화를 소개한다.

1981년 영국의 대처 총리와 함께 80년대를 대표할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그해 1월 말 레이건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여 미국을 방문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미국을 곧바로 가지 못하고, 일본을 경유해야 미국에 갈 수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 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왜 지금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인데, 자신이 갓 대통령에 취임한 한국은 외채 문제에 허덕이는가”라는 의문에 잠겼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플라자합의(1985)가 체결되기 전으로,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던 시절이다. 특히 한국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와중에 발생한 산업별 과잉투자의 문제가 곪아 외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군인 출신 대통령답게, 그는 그 차이를 안보비용에서 찾았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공산화의 위협의 최전선에 한국과 주한미군이 있고, 일본은 뒷짐을 지고 경제의 파이만 키우기에 몰두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한국이 아니었다면 일본이 그와 같이 안일하게 평화비용을 지불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소위 ‘일본의 평화 무임승차론’을 그럴듯하게 펼쳤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전두환 대통령은 전두환답게 레이건을 상대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에게  한국은 아직 경제가 취약한데 국민총생산(GNP) 600억달러 중 6%를 국방비에 지출하고 일본은 1조1600억달러의 GNP에서 0.09%만 국방비로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누구보다도 공산세력에 강경하던 미국의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서론이었다.

이어서 전두환 대통령은 이제 일본도 동북아 안보를 위해 부담을 나눠야 한다며 본론에 들어갔다. 일본의 경제력 확대에 따른 국제 영향력 증강을 우려하던 미국 측으로서는 옳다구나를 외칠 만한 주장이었다. 이어서 전두환 대통령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 해당하는 만큼을 일본이 한국에 경제협력 및 안보차관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미국의 중재가 필요함을 밝혔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은 허투루 쓰지 않고, 다시금 미국을 위한 무기 구매로 이어진다는 주석을 달았다.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다.

전두환은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를 편에 둘 수 있었다. 레이건은 100억 달러의 차관을 허락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한 경협자금이 13억 달러였음을 생각해보면 막대한 수치이다. 물론 100억의 슬로건에서 시작된 한, 일 양국 간 차관규모는 긴 협상과정 끝에 40억 달러로 축소되었다.

사상 유래가 없이 큰 규모의 타국으로부터의 차관을 전두환 대통령이 얻었다. 미국의 백지수표를 받아, 이를 담보로 돈을 받아온 것이니 사실상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었다. 그렇게 확보한 40억 달러로, 지긋지긋하던 외채 상환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함은 물론이고, 1980년대 중남미 국가들을 타격하던 신흥국 외채상환위기도 한국에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전두환의 경제성장은 단순히 3저호황 때문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제법 경제 그리고 경제를 위한 외교에 있어 우량한 성과를 거둔 대통령이다.

40년 전 전두환은 북한과 중국 그리고 소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우방국인 미국에게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으로 일본으로부터 편익을 얻었다. 금강산댐을 운운하며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부끄러운 범죄이지만, 그의 시기에 경제와 국방이 모두 우량하게 발전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시절과는 정 반대로,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어정쩡하고,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점점 틀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아군은 없고 잠정적 적군만 가득한 지금이다. 적과 아군이 확실해 피아식별이 가능하던 40년 전이 그리워지게 된다.

유혈사태를 일으킨 전두환을 용서할 수는 없겠으나, 그가 취임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초점을 강력한 국방, 건실한 경제에 둔 것은 격찬할 업적이다. 지금의 정부는 탄핵 이후의 정부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도덕성이 높을지는 모르나(추신: 필자는 탄핵을 결코 동조하지 않는다. 다만 취임 이후 지지율이 1년 간 70%대를 웃돈 것을 기억한다.) 경제가 정치를 삼키고, 정치는 북한에 삼켜진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우리의 정치와 경제는 북한의 김정은이 핵단추를 만지작거리는 아슬아슬한 짓에 달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먹인다. 장군께는 참으로 죄송할 따름이다. 그가 역사의 죄인으로 심판하려는 전두환은,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서 최초로 일본을 방문한 진일보한 대통령이다. 그는 “자자손손에 걸친 선린 우호 관계의 발전”을 역설했다. 일본으로부터 그 어느 정부보다도 많은 것을 얻어낸 대통령이 그렇게 배짱 좋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올바른 우방인식에 있다. 오히려 피아식별과 전략 형성 차원에서, 이순신은 문재인보다는 전두환에 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말에서 내려오는 것이 좋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toliberty.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