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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 | [박성수 칼럼] 룩셈부르크의 경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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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수 작성일19-07-12 22:00 조회2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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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독일, 벨기에 사이에 위치한 유럽의 작은 내륙 국가 룩셈부르크는 대공작이 다스리는 대공국이다. 대공작(Grand Duke)은 흔히 대공이라 부르며 귀족 직위 중에서 사실상 최고 위치다. 입헌군주제 국가 중에서 대공국은 룩셈부르크가 유일하다.

지난 4월 23일 룩셈부르크의 장(Jean) 대공이 세상을 떠났다. 룩셈부르크를 강소국으로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는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로 입대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하며 룩셈부르크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이후 1964년부터 2000년까지 통치했다.

현재 룩셈부르크는 철강업을 비롯한 제조업 강국이다. 장 대공이 즉위한 1960년대에도 철강업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차 대전 이후 철강 특수가 마감하며, 한 가지 주력산업에 집중된 룩셈부르크 경제는 침체되었다. 다행히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생산성 제고와 구조조정이 경주되어 철강업은 사양되지 않을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위기가 있었다. 1973년 석유 파동이 강타하며 철강 값이 폭락한 것이다. 룩셈부르크도 타격을 입었지만 장 대공의 외교 수완과 행정부와의 협조로 외국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해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철강 산업도 회복시킬 수 있었다. 현재 룩셈부르크 전체 무역량의 3분의 1 가량을 철강 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도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철강업에 그치지 않고 산업 다변화에 성공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제조업 제품이 수출되고 있다.

제조업과 더불어 룩셈부르크는 세계적인 기업·금융 중심지이다. 세계적인 투자펀드 중심지답게 사모투자 등에서도 입지가 굳건하고, 기업 활력의 요체인 스타트업 열기도 뜨겁다. 덕분에 룩셈부르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12만 달러로 유럽의 또 다른 소국인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이다. 1인당 GDP가 높은 국가들일 통상 산유국임을 생각할 때, 룩셈부르크의 경제 번영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룩셈부르크의 발전과 번영을 주도한 데는 장 대공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유럽의 소규모 국가가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핵심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해왔는데, 이는 사방에 강국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도 배울 점이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기업과 자본을 룩셈부르크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앞서 언급한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은 인도의 철강회사인 미탈이 또 다른 철강회사 아르셀로를 합병하여 탄생한 기업이다. 이중 아르셀로는 룩셈부르크 철강회사인 아르베드와 스페인의 아셀라리아, 프랑스의 위지노르 이하 3개 회사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현재 아르셀로미탈의 회장 및 최고경영자는 인도인 락슈미 미탈 회장이지만, 아르셀로미탈 본사는 룩셈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낮은 세금을 포함한 기업 우호적인 환경이 본사를 룩셈부르크로 정하게 된 이유로 평가된다. 철강 이외의 산업다변화 과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자본 친화적인 제도로 말미암아, 주요 다국적 기업이 유럽 본사를 룩셈부르크에 둔 점에 있다.

두 번째는 유럽 교통 중심지로서 늘 타지의 사람들에게 국경을 개방해온 점이다. 통상 내륙 국가는 수출입이 제한되고 새로운 문물과 혁신의 기조를 수용하지 못하는 지리적 제약이 있다고 한다. 룩셈부르크는 그러한 제약을 개방화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언어만 보아도 룩셈부르크어 외에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혼용을 인정해왔다. 덕분에 다국적기업이 진출하기에 매력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척화비를 세운 대원군의 역사가 지금도 반복되는 우리로서는 꼭 답습할 품격이다.

물론 장 대공이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니다. 성취의 열매는 기업과 국민의 열렬한 노력에 있다. 하지만 다양하고 개방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일관되게 품격 있는 기업 친화적 환경을 제공한 것만으로 그는 성군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20%에 불과함에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민간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격려하는 환경덕분에 가능했다. 추가경졍예산을 승인해주지 않는다며 야당을 매도하고, 기업인과 환대한 다음 날 맹공을 가하는 하는 어느 정부와는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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