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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 [다니엘 칼럼] 8‧3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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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다니엘 작성일18-09-26 21:29 조회8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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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 연구가)

정부는 스스로가 야기한 문제를 자유 시장의 탓으로 돌리는 데에 매우 능숙하다. 박정희 정부가 방종과 타락으로 점철된 사채꾼들을 혼내준 것이라는 1972년의 8‧3 사채동결조치 역시 그러한 책임 전가의 표본이다. 당시 드러난 사채 중에는 ‘큰 손’이 아닌 아낙네, 일꾼, 노인 등 평범한 시민들의 쌈짓돈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왜 여유 자금을 은행에 예금하지 않았을까. 기업들은 왜 연리가 최고 40%까지 육박했던 사채로 자금을 조달했을까. 이것은 정말로 자유 시장에서 나타나는 방종과 타락의 결과물이었을까.

저축과 투자를 연결하는 대부자금시장은 기준을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크게는 기업이 주식, 채권, 어음 등을 직접 발행하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금융시장과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이 고객의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하는 간접금융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금융업에서 암시장 격인 사채시장이 기승을 부린 것은 바로 제도권의 직접금융시장과 간접금융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원인은 정부의 개입에 있었다.

간접금융시장의 대표 격인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은 ‘1962년 증권파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정이양을 추진하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수하들이 정치자금 마련을 위해 시세조작꾼 윤응상과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작전을 펼친 사건이다. 시세가 부풀려진 뒤 일반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폭락하자 그 해 5월 31일, 대한증권거래소의 당월 분 거래자금 결제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당시 미결제 규모는 그해 말 화폐 발행액의 25%에 달했다. 6월 1일 증권거래가 중단되고, 8월 31일에는 주식시장을 강제 휴장한다. 4일 뒤 재개장 했으나 삼성증권마저 영업정지를 당한다.

이때의 트라우마로 주식 투자 심리는 60년대 내내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 역시 상장할 경우 정부에 기업을 갖다 바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되면서 상장을 기피하게 된다. 경제가 고도성장하여 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주식시장이 정체돼 있던 이유다. 주식시장 위축은 70년대까지도 경제 고도화에 필요한 장기 자본 조달을 어렵게 했다. 결국 정부는 은행 예금의 일부를 주요 산업 투자를 위한 국민투자기금에 강제 적립하고, 기업공개촉진법을 제정해 기업들을 사실상 강제 상장하기에 이른다.

후발 공업국들은 은행이 예금을 조달하고 기업에 대출하는 간접금융시장을 매개로 성장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자금 지원을 위해 은행권 대출 금리를 낮게 유지했다. 수입인 대출 금리를 낮추면 은행의 경영수지가 악화되므로, 비용인 예금 금리 또한 낮은 수준으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금리는 대부자금시장의 가격이다. 균형가격 이하로 가격을 통제하면, 공급은 부족해지고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결국 투자자들은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기업은 초과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암시장인 사채시장으로 몰려들게 된 것이다.

더구나 당시엔 정부가 경제개발 지원과 추곡 수매 등을 이유로 재정 적자를 키우고 있었고, 그 상당 부분을 한국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하던 상황이었다. 주지하다시피 화폐 발행을 크게 늘리면 물가가 크게 오른다. 60년대의 물가상승률이 지속적으로 두 자리를 기록한 원인이다. 이처럼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면 앞으로도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작동하는데, 예금 금리가 통제돼 있으니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초과 수익을 획득하기 위해 더더욱 사채시장에 몰리게 된다. 기업들 또한 경쟁력 강화에 힘쓰기 보단 돈을 빌려 부동산 투기 등에 나서 ‘인플레이션 이득’을 얻는 데에 열을 올리게 된다. 사채동결조치 당시 기업주가 자기 회사에 사채를 놓은 경우가 3분의 1이나 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자금시장을 정상화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예금 금리를 시장 균형에서 형성되도록 하면 된다. 예금 금리를 높이면 저축이 늘고, 저축이 늘면 대부자금 공급이 늘어 대출 금리도 낮출 수 있다. 또한 저축이 늘어나는 것은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므로 인플레이션이 잡힌다.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같은 예금 금리 하에서도 실질 금리가 더욱 높아지므로, 저축이 더욱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기업들은 인플레이션 이득을 누리기가 어려워지므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러한 노력은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

본질적인 처방을 외면하고 사채를 동결한 결과는 좋지 못했다. 기업들의 부채구조는 1974년 중반에 이르러 다시 8‧3 조치 이전 수준으로 악화된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잡지 못해, 정부가 주요 품목의 가격을 지정하는 고시 가격제를 실시하지만, 시장 가격과 크게 괴리되어 그 차익을 얻기 위한 투기가 기승을 부린다. 기업들엔 “부실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잘못된 신호를 제공하여 무분별한 과잉투자를 부추기며, 관치로 저금리 대출을 남발하도록 한 결과 은행의 부실 대출채권이 크게 늘어난다. 이는 80년대 초중반 외환 수급 안정을 해치고, 80년대 내내 금융 자율화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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